… 조용하다. 차마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들의 관계를 옅게나마 이어주던 유대, 그 유대를 깨버리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던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서로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딱히 그에 구애받지 않는 인물도 몇 보이지만… 적어도 난 그 진실에 대해 마냥 다가가고 싶지만은 않았다.
물론…
…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거, 잘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침묵만 고수할 수는 없다.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호노카 아카네: " … 이제 말 할 때가 되지 않았어? 너희들의 역할, 너희들의 목적, 너희들의 정체, 너희들의 속죄. "
호노카 아카네: " 그리고 너희들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한 채로 이 가상세계에 뛰어들었다면… 우리들과의 관계와 바깥세상의 상황까지도. "
호노카 아카네: " 비록 지금까지의 일을 눈 감아줄 순 없어. 하지만, 아까 네가 말한 것들이 진심이었다면… 지금이 우리들에게 속죄할 기회야, 우에하라. "
우에하라 에리: " … 저기,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은게 있어. "
우에하라 에리: " 난 너희들에게 속죄할 마음은 없어. 난 여전히 이기적이고 나쁜 쓰레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에게 협력하는 이유는 한 가지. "
우에하라 에리: " 오로지 나를 위해서야. 이대로 모든게 끝나버린다면… 난 영원히 그 아이들의 망령에 시달려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거든. "
우에하라 에리: " 그러니까… 혹시라도 갑자기 달라진 내 모습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둘게. "
우에하라 에리: " 난 너희들에게 정보를 말하는 장치나 진상에 이르게 도움을 주는 도구, 그 정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면 만족하니까. "
호노카 아카네: " ……… "
…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잖아.
저렇게까지 말해주는데, 우에하라의 행동에 고마움이나 연민, 동정따위를 느낄 이유는 없어.
마음 먹었던대로 하자. 흔들리지 말고, 차분하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마음 약하게 먹지 마.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괜히 흔들리지 않게끔 차갑게 말했다.
호노카 아카네: " … 그건 고맙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우리와… 아니, 적어도 나와 네 관계는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 이후가 있다면 다룰 문제겠지. "
우에하라 에리: " …… 응. "
우에하라 에리: " 이제 더 끌고 있을 것도 없겠네. 에이트… 나카무라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겠지. "
우에하라 에리: " 우리들, 제로는 거창한 조직같은 것이 아니야. 나와 이리에, 타카하시, 나카무라를 비밀리에 칭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일 뿐. "
우에하라 에리: " 하지만 분명한 목적은 있어. 우리가 이 가상세계에 투입된 이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이야. 혹시, 호노카는 알고 있어? "
우에하라를 비롯한 제로의 일원들이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아 이 가상세계에 투입되었다면, 역시 가장 접점이 높았던 소우토 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소우토 씨는 결국 그 남자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밀고당했고, 그 사건 이후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관 내에서 어린 에이트와 우에하라, 타카하시의 뒤를 봐주었을 사람은 그 남자밖에 없겠지.
호노카 아카네: " B… 당신을 말하는건가요? "
B: " …… 그렇다. "
………
이리에 사야하: " 엑, 너무 단답 아니에요!? 조금 더 이야기를… "
B: " 내가, 굳이, 왜 그래야 하는 거지? 난 너희들이 묻는 질문에는 답한다. 그것이 그 분의 바람이니까. 하지만 쓸 데없는 사족은 붙일 수 없다. "
B: " 모노쿠마에 의해 조금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난 너희들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다. 개입이 불필요한 부분은 알아서 해결하도록. "
아라이 미츠키: " 핫, 허세부리긴. "
이리에 사야하: " …… 칫. "
우에하라 에리: " 소우토 씨의 실종 이후 우리는 기관 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졌고, 그런 우리들을 자리잡게 도와준 인물이… 저 사람이야. "
우에하라 에리: " 신 미래기관 제 2 특수별동지부의 지부장, 아라이 무라사메… B라고 불리우는 남자. 우리는 그런 B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어. 아니, 사적인 은혜를 입지 않았더라도 따를 수 밖에 없었지. 그 기관에 속해있던 이상은 말이야. "
우에하라 에리: "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입사 동기이자 친구였던 소우토 씨를 자신의 생존과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걸 미루어보아, 우리도 마땅히 쓰임새가 있었기에 거두어 들였던 거야…!! "
아라이 미츠키: " 오호, 멀대랑 빡통 남매를 어디에다가 쓰려고 그런거람? 너희들, 어디에 사용당했냐? "
우에하라 에리: " … 가령, 이 살인게임에 투입되는 것이라던가. "
우에하라 에리: " B의 자세한 목적이나 음모같은 건 몰라. 우리와 그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우리가 이 곳에 들어온 것은 B의 직접적인 사주를 받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이 곳에서 해야 했던 일은… "
우에하라 에리: " 너희들… 아니, 정확히는 이 살인게임을 주최한 측을 방해하는 것이었어. "
호노카 아카네: " 우리들이 아니라… 바깥의 흑막을 대상으로 한 방해라는거야? "
제로측의 행동은 명백히 이상했다.
당시의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해듣기로는 첫 번째 살인이 발발했을 때부터 에이트… 나카무라 토지로는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려 시도했었다고 했다.
타카하시 쥰과 우에하라 에리도 사이좋게 손잡고 마에카와를 죽였지… 학급재판의 승리까지 이뤄내면서.
호노카 아카네: " 망치려고 했던 것 치고는… 꽤나 열심히 임했던 것 같은데. "
우에하라 에리: " ……… "
호노카 아카네: " 너와 타카하시는 마에카와를 기발한 방법으로 찔러 죽였고, 별 괴상한 판정 트릭까지 이용해내며 보기좋게 우리들을 골로 보냈어. "
호노카 아카네: " 왜… 왜지? 타카하시도 그랬잖아. 우리를 죽이는 쪽에 투표하라고. 너는 갈등하긴 했지만, 결국 너 자신에게 투표하며 학급재판의 승리를 이뤄냈지. "
호노카 아카네: " 이게 이상한 이유는… 너희들의 목적이 단순하게 살인게임의 승리를 통한 탈출이 아니었다는 점이야. "
호노카 아카네: " 주최 측을 향한 방해가 너희들의 목적이라면… 우리들을 모두 죽임으로서 속죄를 하겠다는 것은 뭐지? 지금껏 그게 진정한 목적인 양 행동했잖아. "
호노카 아카네: " … 그건 거짓이었니? "
우에하라 에리: " ……… 아니. "
우에하라 에리: " 그건 거짓같은 게 아니야…. 나카무라와 타카하시, 나에게 있어 너희들은 「수단」이었던 거지. "
아라이 미츠키: " 수단… 이라. "
우에하라 에리: " 너희들을 모두 배신하고, 모두 죽이고, 바깥 세상에 속죄한다. 그건 우리들의 목적이 맞아. 너희들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는 증명해낼 수 있거든. "
우에하라 에리: " 그것이 패러디스, 그리고 가상 세계를 이뤄낸 자들의 바람에 완전히 어긋나기도 했으니까. "
호노카 아카네: " 그러니까 묻잖니…? 대체, 우리들을 죽여가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속죄가- "
우에하라 에리: " 키보가미네 학원 80기생들은, 존재 자체가 죄야. "
… 말을 내뱉는 것 조차 상당한 망설임을 수반하는 듯 우에하라는 잠시 띔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우에하라 에리: " … 모두가 죄인인 것은 아니야. 하지만 판데모니움으로 인한 사회적 여론과 우리들 중 섞여있는 진짜 죄인이 모든 것을 이렇게 만들었어. "
칸다 케이타: " 판데모니움… 이라고? "
호노카 아카네: " 판데모니움, 나카무라의 기억 속 들었던 것으로는 래디컬 센터와 신 미래기관의 연계로 이루어낸 기계 장치로 인한 비극. "
호노카 아카네: " 패러디스의 파장이 거짓된 하늘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서있는 자들의 어떠한 욕구를 최대치로 이끌어내어 작은 마을의 식인극을 만들어냈지. "
B: " … 남의 아픈 기억을 잘도 지껄이는 군. "
… 센다이시, 그 곳에서 일어난 판데모니움 사태. 마을에 없었던 B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주민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었다.
신 미래기관이 패러디스를 이용하여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 시키고, 서로를 죽여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자에게는 막대한 부를 제공하겠다고 말하였고…
… 그 과정에서 지부장 B의 아내가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녀의 딸이 그녀의 아들을 잡아먹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딸은 그 시체를 우걱우걱 퍼먹다가 질식하며 일가족이 파멸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그 사건은 신 미래기관 측이 절망의 잔당이 한 짓으로 덮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어째서 우리의 죄가 되는거지?
이리에 사야하: " 뭔가, 슬슬 쎄하지 않아? 왜? 그게 우리랑 무슨 연관인데? 판데모니움이 안타까운 일인건 알겠는데, 그게 우리랑 무슨 잘못인데! "
이리에 사야하: " … 라던가. "
그렇게 말하는 이리에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 차가웠고, 눈은 싱긋 웃고 있으면서도 싸늘했으며, 어째서인지 모를 섬칫함이 담겨있었다.
칸다 케이타: " ……… "
칸다 케이타: " 진짜,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망상이긴 하다만은… "
칸다 케이타: " 우리 중에,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인가? "
호노카 아카네: " … 말장난은 그 쯤 해둬. 우리는 학생이야. 아무리 초고교급이니 뭐니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겠어? "
호노카 아카네: " …… 가능했어? "
직접 말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일개 고등학생이 저런 혐오스러운 일에 가담했고, 그 한 명으로 인해 세상의 증오를 사게 되어 죽어야만 하는 죄인이 되었다… 라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에노시마 쥰코의 전례를 생각하면… 그리고 이미 터무니 없는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음을 생각하면…
바라건대 그저 나와 칸다의 쓸 데없는 기우였기를, 우에하라의 부정으로 아라이 미츠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되더라도… 그저 그 뿐인 해프닝이기를 바랐다.
우에하라 에리: " … 응. "
유감스럽게도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
차마 따지기에도 곤란했던 것이… 우에하라가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또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호노카 아카네: " 하… 하하… 진짜, 말도 안 되네. 이거. "
칸다 케이타: " ……… "
칸다 케이타: " 어이, 모니터 속의 2D들! 얘기 들었나!? 우리들 중에 말도 안되는 살인극의 주범이 있단다! 니들도 뭐 아는 거 있음 퍼뜩 말해봐라! "
아라이 미츠키: " 그 이전에… 틀딱. 우리 중에 당신의 가족들을 모두 몰살시킨 범인이 있다고 하는데… "
아라이 미츠키: " 그게 사실이냐…? 사실이라면, 적어도 넌 그 범인을 알고 있는 거겠지? "
B: " … 알고 있다. "
아라이 미츠키: " 용케도… 참고 있었네. 당신의 성격이라면 이미 누군가는 두 동강이 나있어야 할텐데. "
B: " ……… "
B: " 사냥감을 쫓을 때에는 언제나 알맞은 기회를 노려야 하는 법이지. 귀가 닳도록 가르쳐주지 않았나? "
아라이 미츠키: " 나이가 들면 쓸 데없이 말을 길게 하는 모양이네… 그만 말해, 틀니 닳는다. "
호노카 아카네: " … 누군데요. "
호노카 아카네: " 우리 중에 그 판데모니움이라는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 지장을 준 사람이 정말로 있다면, 숨길 이유는 없잖아요…!! "
모노쿠마: " 워워, 잠깐 잠깐-!! "
모노쿠마: " 나는 분명히 너희들 17명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하라고 했지, 그 이상으로 앞서나가라고는 하지 않았다…? "
모노쿠마: " … 너희들이 간신히 얻어낸 기회인만큼 규칙을 지켜. "
눈을 시뻘겋게 번뜩이며 발톱을 세우는 모노쿠마의 모습에 억압되어 별다른 딴지를 걸 수 없었다.
궁금한 것도 많았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 산더미 같았기에 안달이 났지만…
… 간신히 추스러내었다.
칸다 케이타: " 그러니까 너희 제로, 에이트나 타카하시, 우에하라… 니까지 셋의 역할은 알겠다. 우리를 이용해서 바깥에 속죄하고, 이 게임을 주최한 측을 방해한다. "
칸다 케이타: " 바깥에 속죄하는 이유는 우리 중 한 명이 판데모니움 사건을 일으킨 주범에 속해있기 때문이고,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에 그런 사실이 퍼지니 우리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맞나? "
칸다 케이타: " 그렇다면 B라는 사람은 꽤나 대담한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구마. 주최 측의 목적을 방해하기 위해서 너희 "학생" 셋을 투입시켰다. 그리고 이 가상세계의 살인게임은… 살인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으면 성립되지가 않다고 보는데. "
칸다 케이타: " 그렇지 않나? 이 게임이 누군가의 여흥에 불과하든, 실험에 불과하든… 결국 누군가는 바깥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기라. 안 그렇나? 그런 사람들을 방해하려고 했던 것이 대놓고 드러났는데, 괜찮은 거 맞습니꺼, 아저씨? "
이리에 사야하: " 역시 칸다 형이네! 응, 완전 정답이야! 추리 겁나 잘해, 소름. "
B: " … 내 살 길은 내가 찾는다. 애송이에게 걱정받을 정도로 무르지 않아. "
아라이 미츠키: " 그래… 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는 짓이 유명인 걱정하는 거랑 저 인간 명줄 걱정하는거지. "
호노카 아카네: "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은… 역시 에노시마 쥰코, 그 여자도 키보가미네 학원의 학생이었으니까? 78기에서 그런 흉악범이 튀어나왔는데 80기에서도 악당 하나가 튀어나왔으니 오죽하겠어. "
호노카 아카네: " 라고는 말했다만… 역시 납득하기 힘드네. 그거, 되게 뜬금없는 말인건 알아? 그나마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건 우리중 누군가가 그 사건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사건에 우리가 휘말린 것 자체가 그런 터무니없는 이유라도 없으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야. "
호노카 아카네: " 마음이 찢어지네…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겨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낸 것 같았는데, 결국 의심의 연장선일 뿐이었네. "
호노카 아카네: " 모두를 믿으며 나아가자던 네 말은 아직도 유효하니, 카나데? "
지금까지 조용했던 마키와 에비나, 카나데의 AI들이 다소 늦게나마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저 세 명의 기억이 저장된 마지막 시점은 세번째 재판에서 처형을 받을 때, 아니지… 정확히는 마키를 제외한 두 명은 그 때 까지는 온전할 것이다.
처형에 휘말리지 않았던 마키는 그 이후와 지금까지의 기억까지도 온전하겠지. 그 말인 즉슨 이 살인게임 이전의 과거를 다루기에 그들의 기억에 지장이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 뭔가가 있구나, 너희들. 아니, 이 시점까지 왔으니 연관이 없는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만. 아무튼 무언가를 듣고 싶었던 탓에, 카나데의 대답을 기다리자 모니터 너머의 그는 싱긋 웃으며 힘차게 말했다.
[카나데 카즈키] " …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한 게 사실이라면…… "
[카나데 카즈키] " 당연하지! 난 언제나 너희를 믿고 싶어! 설령 그렇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만큼은 그러지 않을거다. "
[카나데 카즈키] " 너희들도 명심해줬으면 좋겠어! 비록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
호노카 아카네: " ……… "
호노카 아카네: " 그래, 그런 따뜻한 말이… 듣고 싶었을지도 몰라. "
비록 저 말이 순수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출을 위한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카나데는 히노 유이를 고문해가며 인간성을 버린 모습까지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카나데에게 걸었던 기대에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래서, 지금 저 모니터가 내뱉는 희망찬 말이 가식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 화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카나데의 말에 공감을 했었고 그 뜻에 따라 최대한 모두를 믿어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나는 모두를 믿지 못해서 다른 섬으로 도주하려고 했던 이즈미를 막아세웠고, 같이 탈출하자던 제안을 뿌리쳤고, 나로 인해 기억의 섬에 남게 된 이즈미는… 결국 죽어버렸다.
이즈미의 죽음에 간접적으로나마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 믿어보는 것을 멈추기에는 아직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우에하라 에리: " … 카나데, 기억 나? 저번 재판에서 나의 선택으로 재판의 결과가 바뀔 수 있었을 때… 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한 마디가 있었잖아. 내가 한 선택을 믿고, 후회하지 말라고. "
우에하라 에리: " 사실… 엄청 후회했어. 내가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후회했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결과를 바꿨을까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어. 그 때로 돌아가도 결과가 크게 바뀌지 않았을거라 생각해. "
우에하라 에리: " 하지만… 그 후회를 한 번 겪으니까 알겠더라. 사람은 한 번 후회를 해야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라고. "
우에하라 에리: "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
[카나데 카즈키] " ……… "
[카나데 카즈키] " 푸핫, 우에하라~ 너무 낯 간지러운 말을 막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사람이라서 망정이지 기계였으면 과열되어서 폭발했을거야! "
칸다 케이타: " … 근데, 점마들은 지들이 모니터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아나? 지들이 기계인건 인지하고 있는기가? "
모노쿠마: " 넵-!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들은 A.I.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덧씌워진 기억과 인격을 바탕으로 너희들과 대화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가상의 인격에 불과해서 혼란스럽다~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으니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구. "
칸다 케이타: " 그런가… "
[에비나 코토리] " … 아직 이 이야기를 끝낼 순 없어요, 그렇죠? 네 명의 제로 속 이레귤러, 이미 칸다는 그걸 상정하고 말하신 것 같은데요. "
칸다 케이타: " 그렇지… 대충 들어보니 에이트, 타카하시 쥰, 우에하라 에리는 어렸을 적부터 함께 지냈고 이래저래 목적도 일치하는 것 같은데, 딱 한 명…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 꼬맹이가 점마 아니더나? "
칸다 케이타: " 이리에 사야하, 내는 오래 전부터 니를 의심하고 있었다. "
이리에 사야하: " 응? 아니, 정체야 뭐… 이 판국까지 온 마당에 숨기고 있지도 않았는데. 날 의심했다구? 어째서? 그 이전에 어떻게? "
칸다 케이타: " … 태도의 문제였다. "
칸다 케이타: " 전국에서 특별한 삶을 누리다 모인 초고교급 학생들이니 성격의 독특함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저 머스마와 아라이 미츠키는 유독 달랐다. 아니… 아라이 미츠키도 내면에 감싸져있는 일말의 불안감 정도는 있었다. "
칸다 케이타: " 하지만 점마에게서는 그 어떠한 불안감도 느낄 수 없었지. 멀리서부터 너희들을 지켜보니 알겠더라. 저 여유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거라고. "
… 칸다가 의식을 잃고 깨어나 미도리카와, 그 아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리에가 수상했다고 털어놓았지.
그 때는 단순히 감에 불과하니 흘려들으라고 그랬고, 이후로 마키의 소식과 모노쿠마들의 폭격이 시작되면서 완전히 묻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이리에는 단 한 순간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순히 도박사로 길러진 담력이라던가, 특유의 성격을 넘어선 무언가의 이유가 있다면…
칸다의 의심도 합리적인 것이 되겠지.
칸다 케이타: " 타카하시나 우에하라는 물론, 저 미친 똘게이 여자도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는데. 왜 저 머스마만 유독 한결같이 여유로웠을까. "
칸다 케이타: " 대답을…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
이리에 사야하: " 에? 아니, 고작 그런 걸 눈 여겨보고 있었어? 대단하다 정말! 눈썰미 완전 쩔어. 나 오늘부터 칸다 형의 팬이 될지도 몰라! "
칸다 케이타: " 니 내 놀리나!? 마, 개소리 그만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
이리에 사야하: " 난 형들같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
호노카 아카네: " 죄인이 아니라니… 아니, 그 이전에 너와 우리를 구분짓는듯한 그 말은 뭐야? 너는… 우리와 같은 키보가미네 학원 80기생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
모노쿠마에 의해 강제적으로 우리들의 역할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시 되었기때문에, 우리들의 과거 관계는 잠시 제쳐둬야만 했다.
제쳐두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애초부터 이레귤러였던 에비나를 제외한 열 여섯명은 똑같은 동급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얼핏 돌아오던 기억의 파편들에서도 보았던 것 같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 말은 마치…
이리에 사야하: " 아니~? 나도 모두와 같은 키보가미네 학원 80기생이야! 그저 누나들과는 달리 회개를 인정받았다는 점이 달랐던 것 뿐. "
이리에 사야하: " 그렇게… 생각했었지. 결국엔 나도 주최측의 이용말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지는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어. "
B: " 웃기지도 않지.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동료를 판 자가 회개라는 구원을 그리 쉽게 얻을 줄 알았더냐? "
이리에 사야하: " 명예와 권력에 눈이 멀어 동료를 판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저씨! "
아라이 미츠키: " 동료를 팔아…?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 "
이리에 사야하: " …… "
이리에 사야하: " 그래, 뭐… 말을 해야 진행이 되겠다면 짧게나마라도 말해야겠지. 아직 모노쿠마가 사건의 배경까지 말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테니 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선에서만 말하자면…. "
이리에 사야하: " 나도 처음엔 모두와 같은 취급이었어. 에노시마 쥰코의 뒤를 이을 악마가 저 중에 있다니. 그런데 그 중에 누가 악마인지 알 도리가 없네? 그럼 어쩌지? "
이리에 사야하: " 어쩌긴 뭘 어째, 모두 족치면 고민할 이유가 없는데! … 아이들에게 너무나 야만적인 어른들이었어. 웃긴건, 에노시마 쥰코라는 최악의 선례가 있던 탓에 우리를 지켜주려는 여론이 거의 없었다는 거야. "
이리에 사야하: " 덕분에 우리 모두는 세상의 모든 비난과 위협, 때때로 덮쳐오는 죽음의 위기에서 공포에 떨어야만 했고… "
이리에 사야하: " 그대로 가다간 모두 의미없이 죽을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
우에하라 에리: " 우리 중 한 명을 언론에 고발했지. "
"고발"
듣기에도 퍽 유쾌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 단어를 듣자마자 얼추 상황이 그려졌다.
궁지에 몰린 우리들 중 한 명은 악마를 고발한 영웅이 될 수 있다. 이리에의 눈에는 위기가 기회로 보였던거다.
그래서… 그 아이는 우리 중 숨어있는 악마를 끄집어낸거다.
클래스메이트 입장에서 듣기에 좋은 일은 아니지만, 세상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훌륭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게다가, 그 한 명이 식인극에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클래스메이트 입장에서도 잘 한 일이 된 것이다.
그러면… 뭐가 문제지? 거기에서 끝나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 한 명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로 그런 일을 벌였다면 죽어도 싼 정도의 악인아닌가?
그 이상으로… 뭐가 더 필요했던거지?
이리에 사야하: " 복잡한 표정이네, 호노카 누나. 응, 나도 복잡한 심정이었어. "
이리에 사야하: " 모두가 죽게 생겼는데 의리를 챙길 여유따위가 어디에 있겠어…?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추리한 끝에 우리 중 숨어있는 악마를 찾아낸거야. 적어도 노력했어, 난. "
호노카 아카네: " 그게… 누구였길래 그래? 일개 고등학생인 우리들 중 그 끔찍한 식인극에 가담하고, 거기에 우리들까지 세트로 엮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그 사람이. "
호노카 아카네: " 새로운 단서가 주어질 때마다 혼란스러워서 차마 말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곤란하다고… 초장부터 너무 수위가 센 거 아닌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생각을 멈추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
알려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의지가 꺾인 것이 아니라, 알려주지 않아도 무언가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니 무언가 떠올랐다. 포기하지 않으니 다다르는 것이 두려울 정도의 가능성이 다가온다.
왜 그 아이가 떠올랐는지는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봐야 알겠지만, 이 상황에 그 이름이 떠오른 것은 마냥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호노카 아카네: " 패러디스라는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식인극에 가담했다. "
호노카 아카네: " 그 범인은 우리들, 80기생 중에 숨어있었다. "
호노카 아카네: " … 물을게요, B. 우리 중에 숨어있다던 악마는… 어떤 형태로 그 사건에 가담한건가요? "
B: " ……… "
B: " 사건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군. 녀석이 그 기계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하고 바라던 때도 가끔 있었지. "
B는 다소 공허해보이는 눈을 돌리며 나의 시선을 피한다.
거기에는 분명 분노나 슬픔같은 감정이 채워져있지 않았다. 그에 대한 감상평을 남길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이나마 느껴지는 그의 감정을 지나칠 순 없었다.
그건 그렇고… B에게서 중요한 힌트를 얻어냈다. "패러디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우리 중 숨어있던 누군가가 한 일이라는 것이라면…
가능성은, 그 아이밖에 없어.
호노카 아카네: " 얘들아, 이리에가 말한 우리 중에 숨어있다는 사람은 아마… "
호노카 아카네: " … 하나에 리온 이었을지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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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기자 / 마키 유이치
초고교급 작가 / 호노카 아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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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농구선수 / 카나데 카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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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도박사 / 이리에 사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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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요리사 / 칸다 케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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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간호사 / 우에하라 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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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용병 / 아라이 미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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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행운 / 에비나 코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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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생존 인원: ?? / 17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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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랫동안 업로드가 없었는데 졸업재판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쳐낼 파트는 쳐내고 그에 맞게 재구상하느라 쫌,,, 늦었읍니다 이래도 25편이 넘는 분량이라 초비상이네요
1~3편은 사소한거 다루면서 가볍게 가보려고 했는데 다뤄야할 대주제가 6개는 넘어서 진도를 좀 세게세게 나가려고 합니다
이번 화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정말로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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