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문기자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작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장문의 글을 쓰다가 지우고, 지우다가 지우기를 멈추며 수시로 키보드를 잡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 … 나는 무서워. 이걸 기사로 썼다간, 정말로 어떤 일이 닥쳐와도 이상하지 않을거야. "
" 게다가 용기를 내어 기사를 올린다고 해도 이런 엽기적인 글따위 그 누구도 진심으로 받아 들이지 못할거라고. 역시… 이건 잊어버리자.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잖아! "
" …… "
" 저기, 유미코… "
"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해요.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도… 유이치에게 있어서도,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현명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
" 그렇다면 그만 두면 될 일이잖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벚꽃이 핀 날에 피크닉을 가고, 단풍이 떨어지는 날에 드라이브를 가고… 일상을… 누릴 수 있잖아…!! "
" …… 미안해요. "
그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만류하려는 한 가정의 아버지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처절하게 보이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마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과 함께, 유이치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늙어가고 싶어요. 몸이 병들고 마음이 지쳐도 가족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
" 이건… 어른들이 시작한 이야기에요. 이 고통을 다음 세대에, 유이치의 세대까지 넘겨버릴 순 없어요. "
" …… 유미코. "
남편과의 대화에서 결심을 굳힌듯한 그녀는, 몇 개월이 넘도록 그들을 지옥에서 방황하게 했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게 되었다.
" …… 해버린거야? "
" … 네. "
" ………… "
" ………… 흐, 흐윽… 흐흐윽…!! "
" … 여보. "
" 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거야…!! 우리는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기자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인데…!! "
" 미안해요, 미안해요… "
이미 두 남녀는 탈진할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그나마 조금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던 여성이 그녀의 남편을 끌어안으며 거듭 사과를 내뱉었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그들이 느꼈던 마지막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권력과 맞선다는 불안감?
자신의 아들을 두고 떠난다는 미안함?
인간으로써의 생존욕구?
… 그게 아니라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고철이 부서지는 소리에 느껴지는 공포감?
어느 쪽이라도 이제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추상적으로나마 담은 어머니의 유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추측 뿐.
그저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 이전에 진정한 의미조차도 알 수 없는 한 줄의 문구만을 쫓아왔다.
「우리는 심해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료가 태워지고 사라진 부모님의 사무소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상태로 내게 넘어온 것이 이 유서였고, 그 유서에서 내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글을 읽어봐도 명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 유서 한 장 만을 남긴 채 부모님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때의 감정이 무뎌진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어이가 없을 정도다.
부모님은 무엇을 위해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날 이후로도 세계는 여태까지와 변함없이 흘러갔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무엇을 생각하셨든 간에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든 부모님의 인맥이 닿아 어린 나이에도 기자 일을 할 수 있게된 나는, 매일마다 그 유서를 생각하며 방과후 언제나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 그리고, 여느 날과 다름 없을 줄 알았던 나에게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그 곳에 도착한 한 통의 서류로 인해서… 말이다.
「사립 키보가미네 학원」
무구한 역사를 가지고, 각계의 유명한 인재를 끊임없이 배출해온 전통 깊은 학교.
수많은 분야의 초일류 고교생을 모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부 공인의 초 특권적인 학교.
이 학교를 졸업만 하면, 남은 인생은 무조건 성공이라고 까지 불리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희망]을 길러내는 일을 목적으로 한, 그야말로 희망의 학교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곳이다.
그런 키보가미네 학원의 입학자격은 두 가지이다.
"현역 고교생일 것" 그리고 "각 분야에 있어서 초일류일 것"
학교 측에 스카우트된 학생만이 입학을 허가받는, 그야말로 스페셜한 학교.
…그런 곳에, 내가 입학한 것이다.
우선 지금 이 독백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소개부터 해야겠지.
나는 키보가미네 학원의 80기생으로, 초고교급 기자라는 재능으로 이 곳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잊지 않으며 기자 일을 해오던 탓이었을까, 주변으로부터는 나름 열정있는 아이로 보여졌던 것이 원인중 하나로 작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학원의 제안은 분명히 달콤했다.
졸업 후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대단한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 만으로도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78기의 에노시마 쥰코, 그 사람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불명예를 떠안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새로운 키보가미네 학원이 재건된 시점이지.
과거 청산을 위해 수많은 기부와 선행, 그리고 세계 재건 프로젝트에 앞장선 키보가미네 학원은 어쩌면 인류사상 최대 최악의 절망적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보다도 더욱 큰 명예와 존경을 받게되었다.
당연하게도 키보가미네 학원의 과거 행적을 비난하는 자들도 많았으나, 결국 그 학원은 새로운 학원장의 주도하에 발빠른 번영을 맞이하였다.
키보가미네 학원에 대해서는 알아내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지만, 이 이상의 영역은 흥미 밖이었다. 나는 그저 나와 함께 입학하게 될 다른 아이들의 자료를 읽어보며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비록 우수한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나의 목표는 그것에서 그칠 순 없다.
" 후후,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니? "
" … 노크정도는 하고 들어올 수 있잖아. 귀신인 줄 알았다. "
"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귀신을 믿어? 푸핫, 의외네? "
" 참나… 별 거는 아니고, 우리와 함께 키보가미네 학원 80기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어. "
" 그래? 생각보다 긴장되나 봐? "
" … 긴장되지 않으면 거짓말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게 얼만데. "
과일 접시를 들고 온 아이는 책상에 그것을 내려놓으며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뒤이어 어깨가 파멸되는 듯한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감각인지라, 살짝 맺히는 눈물을 머금고 간신히 고통을 삼켜냈다.
" 너 이거, 가정폭력이야. "
" 어깨 주물러준다고 가정폭력이면 전 세계 손자손녀들은 간헐적 패륜 집단이게? 엄살 그만 부리셔. "
" …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거야? 내일은 입학식이니까 일찍 자두는 편이 좋아. "
이미 자정이 넘은 시계를 바라보며 내 방에서 나가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 보았지만, 녀석은 딱히 내 신호는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듯 시계를 바라보다가 아예 침대에 눌러 앉아버린다.
" 마침내… 여기까지 왔네. "
" 솔직히 의외였어. 네가 그 이야기를 떠들어 댈 때만 하더라도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
" 내가 뭐랬어? 하면 된다고 했잖니. "
" ……… "
분명 알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나란히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을.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계속해서 가깝게 있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었으니까.
의심이 아니라 의아하다는 감정만 가져가도록 하자.
… 그러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 나의 노력을 눈치라도 채 준 것일까. 녀석은 어깨에 실린 힘을 느슨히 하여 뒤에서부터 나의 목을 감싸 안았다.
" 고마워, 그리고 고생 많았어. "
" ……… "
" 우리… 앞으로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자. "
" 너도, 나도… 모두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
모두가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말에 쉽사리 긍정하지 못했다.
아직, 나는 내가 찾아야만 하는 진실에 도달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당하신 사건은 나를 평생토록 옭아 매었고, 어머니가 남긴 문장 한 줄은 평생토록 뇌리를 헤집고 다녔다.
내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내 뒤에 있는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기에 구태여 그 감정을 망칠 필요는 없었다.
" … 대답이 없네? "
" …… 미안. "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몽롱해져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늦은 탓이겠지.
계속해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런 몽롱함은 기분 좋은 그것에 가까웠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이 몽롱함이 가루처럼 흩날려 질까봐 두려워, 그저 그 아이에게 몸을 맡긴 채로 눈을 감았다.
… 그 기억이, 이 이상 현상에 휩쓸리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 … 얘, 괜찮니? 역시 이게 효과가 직빵인것같아! 타카하시, 한 번 더 해봐! "
???: " 후후, 역시 내가 만든 성수로구나. 언데드도 정화시킬 수 있는 회복력, 보았느냐? "
???: " 맘마미아, 무척이나 Fun하지 않은가! 좋았어, 한 번 더 끝없는 성수 레쓰고! "
게슴츠레 눈을 뜨자 두 아이가 나를 둘러싸며 묘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서서히 뚜렷해졌다.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다소 껄렁해보이는 인상의 소년은 널브러진 물병 옆 새로운 물병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내 얼굴에 뿌려버렸다.
" ……… "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린 얼굴을 조용히 닦아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여기는 어딜까. 이 사람들은 누굴까. 누구이길래 내 얼굴에 신나게 물을 뿌린걸까.
분명 아까까지는 평범한 일상 속이었을텐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인걸까.
…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굉장히… 어질어질한 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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